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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지통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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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에서 휴지통은 늘 거기에 있다. 책상 아래, 의자 옆, 프린터 근처. 자리마다 한두 개씩, 너무 흔해서 이름조차 잘 불리지 않는다. 나는 휴지통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존재는 늘 일상을 받치고 있다. 마치 창밖의 나무처럼, 보려고 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처럼.

 

휴지통은 보기 싫은 것들을 조용히 받아준다. 구겨진 메모, 다 쓴 커피 스틱, 실패한 초안의 흔적. 쓰레기는 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규칙이 사무실에는 있다. 지저분한 건 감춰지고, 치워지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사라져야 한다. 휴지통은 그 사라짐을 대신 수행한다. 우리의 하루가 깔끔해 보이도록, 어지러운 마음이 밖으로 흘러나오지 않도록.

그런데 이상하게도, 휴지통은 넘칠 때에야 비로소 보인다. 발끝에 걸릴 때, 종이가 삐져나올 때, 냄새가 날 때. 그제야 “아, 여기 있었지” 하고 인식한다. 존재는 우리가 자각하는 순간 다시 또렷해진다. 보고 싶은 것은 보고, 보고 싶지 않은 것은 시야에 있어도 모른 척하는 마음의 습관처럼.

 

생각해보면 휴지통은 단지 버리는 통이 아니다. 세상을 견디기 위한 작은 장치다. 모든 것을 다 보고 다 기억하면, 하루는 너무 무겁다. 휴지통은 불필요한 것의 자리를 정해주고, 뇌의 부담을 덜어준다. 가리고 싶은 것들을 잠시 맡아주며, 나를 다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든다.

 

오늘도 휴지통은 조용히 내 옆에 있다. 너무 흔해서 잊히지만, 잊히는 덕분에 나를 살게 하는 존재. 어쩌면 휴지통은 쓰레기를 숨기는 곳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보지 않기로 선택했는지를 담아두는 곳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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